★★★★☆

풍부한 표현력으로 그림을 읽는것 같은 책. 다소 아쉬운 마무리

 

 

읽기 전


1Q84를 통해 알게된 무라카미 하루키였고,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첫 장을 펴고난 뒤에는 조금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작가의 말 마지막에 담겨있던 몇십년 전 날짜가, 이 소설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어버렸다.

근 5년간 베스트셀러를 기대하고 집어들었는데, 토지같은 현대소설 초창기 작품을 받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객관적으로 인정받고 있음은 불변한다는 기대 반과

당시 시대적 상황이나 감성이 지금에도 통할까? 라는 불안 반으로 읽기 시작하였다.

 

 

읽으면서


첫 문장을 읽자마자, 불안감은 날아갔다.

 

주인공이 비행기에 내려 독일 공항에 도착하는 단순한 장면이지만,

1인칭 시점에서 시선이나 느낀점들을 세세하게 표현해주어 글이 아닌 그림을 읽는 느낌이었다.

주인공이 바라보는 풍경이나 느낀점들을 상상하며 읽어지고, 술술 읽힌다는 표현이 맞는것 같다.

 

1970년대 독일 공항에 가본 경험은 없지만, 다양한 비유법으로 비슷한 경험들을 끌어모아 주인공과 같은 시선을 가지게 해주었다.

특히 처음에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다양한 감각적 요소를 자극한다는 것이었다.

풍경을 묘사하다가 갑자기 옆에서 나는 다양한 냄새들을 느끼게해주고, 청각과 촉각적 요소들도 포함해 내가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다.

이러는데 책에 몰입되는 것은 당연했다.

 

몰입하여 읽을 수 있는 책을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나같은 경우는 특히 더 좋아한다.

독서량이 많지 않은 나로서는, 한번더 생각이 필요한 책보다 받아들여지는대로 이해하는 책들이 더 반가운법이다.

또 하나의 장점으로는 그림을 읽듯 빠르게 읽어나가기 때문에

정신없이 읽다보면 지나온 몇 백페이지의 두께에 성취감이 드는 것이다.

 

 

기억나는 장면 두 가지

 

먼저 여주인공 '미도리'가 주인공에게 얼마만큼 사랑하냐고 묻는 장면에 봄날의 곰처럼 좋다는 표현이 있다.

더보기
"봄날의 곰만큼 좋아"

네가 봄날 들판을 혼자서 걸어가는데,
저편에서 벨벳 같은 털을 가진 눈이 부리부리한 귀여운 새끼 곰이 다가와

그러고 네게 이렇게 말해.
' 오늘은, 아가씨 나랑 같이 뒹굴지 않을래요'

그러고 너랑 새끼 곰은 서로를 끌어안고 토끼풀이 무성한 언덕 비탈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하루 종일 놀아. 그런 거, 멋지잖아?

실제로 입밖에 내기에는 오그라드는 말이지만,

무슨 대답을 하던 감흥이 없을것 같은 질문에 센스있게 답을 했던 내용이라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당시에 감정선을 잘 표현하는 문장인 것 같다.

 

주인공이 책을 즐겨보는 인물로 나오는데,

현상에 대해 다양하게 표현을 할 수 있는 독서가의 매력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된다.

 

 

 

다른 하나는 주인공이 '나오코'와 '미도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부분이었다.

부부의 세계에서 '사랑이 죄는 아니잖아' 라는 장면이 순간 떠올랐지만, 처음부터 읽어온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감정선이 최고점에서 살짝 내려간 나오미에 대한 마음과,

점점 올라오던 미도리에 대한 마음이 만나는 지점이었는데 그동안에 감정선이 꽃이 피는 장면이라고 생각된다.

주인공의 갈등 또한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었고, 다음 장을 빨리 넘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결말이 아쉬웠다.

물론 여운이 더 남는다는 점에서 열린결말에 대해 긍정적이나, 절정단계에서 개연성 없이 뚝 끊어버린 느낌이다.

독자들에게 충분한 시간과 표현을 들여서 해당 장면까지 끌고왔는데

이어져온 감정선은 오간데 없이, 날카로운 칼로 자른것 처럼 깔끔한 단면선이 아무것도 남지 않게 하였다.

 

책을 덮은뒤에 기억나는 것은, 어디인지 모를곳을 헤매는 주인공의 모습이다.

작가는 무언가를 상실하고, 갈피를 못잡으며 헤매고 있는 우리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의도는 좋았으나 급작스레 끊어져버린 감정선이 아쉬움을 남긴다.

한편으로는 애처롭게 헤매고 있는 주인공의 상황을 더욱 부각시켜주는 장치로, 짜임새 있는 결말이라고 생각할 여지도 있는 것 같다.

 

 

총평


먼저, 풍부한 표현력이 나에게 가져다주는 생각들이 있었다.

근 몇년간 취직과 회사생활을 하면서 간략함이 강조되는 환경속에서 살아왔다.

보고서나 메일에는 두괄식으로 핵심을 강조하고, '그래서 결론이 뭔데?' 라는 말을 들을정도로 간단함이 중요시 된다.

물론 모든 업무에 있어 빠른 의사결정으로 행동하는것이 중요하지만, 업무외에도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요약하고 핵심을 찾는 능력은 늘고있지만, 조그만 것에서 많은 것을 발견하고 느낄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반대로 잃어가고 있다.

 

현상에 대해 단순하고 간단하게 생각하고, 순간만을 기억한다면 모든것이 무미건조해지고, 세상이 흑백으로 바뀌는 느낌이다. 

다른사람에게 전달할 때도, 그때의 현상이나 감정을 100% 전달할 수 없다.

나 또한 숨겨져있는 즐거움들을 놓쳐가며 살게 될 것 같다.

풍부하게 생각하고 표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몇 십년전 감성과 시대적 배경이 지금에서도 통할까라는 의문에 대한 해소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오랫동안 읽어져온 이유는, 시대와 상관없이 삶을 살아가는 모든이에게 적용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삶과 죽음, 사랑에 대해 고민하고 겪어왔던 모두가 공감하고 생각할 거리가 있는 책이었다.

주인공을 통해 삶 속에서 방황하는 우리들을 위로하려는 것 같기도 하다.

 

책을 읽다가 죽음에 대해 생각거리를 던져준 문구를 소개하며 후기를 마친다.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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