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버린 것은 신체적인 눈인가, 마음의 눈일까?
읽기전
인간의 힘으로 어쩔수 없는 아포칼립스?
원래부터 눈이 멀어있던 사람들이 도시를 이루고, 그들의 삶을 보여주는 책 인줄 알았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만의 특별한 규칙과 생활방식이 있을것이고,
이를 현실적으로 표현하여 세계관속에 빠져들게 하는 그런 내용일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영화로도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본 포스터에서는, 전혀 다른느낌이었다.
마치 인간의 힘으로 어쩔수 없는, 세기말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사일런트 힐 포스터에서 받았던 느낌과 비슷했다.
갑자기 닥쳐버린 거대한 자연재해같은 상황에서
무기력하게 하루하루 살 궁리를 하고있는 인간의 무력함과,
억제력이 사라진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 같았다.
읽으면서
눈 먼자들의 대화방식
공감하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이질적인 것은 대화의 표현방식이었다.
보통 책에서는 따옴표로 누가 말했는지, 대화의 흐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런구분이 없이 마침표로만 끝난다.
두 사람이 번갈아가면서 대화하는 것인지, 한 사람이 여러마디의 말을 하는지는
대화의 흐름을 더 잘 읽어야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모르는, 대화에 있어 시각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실제 눈이 안보이는 사람이 되어, 말 한마디에 집중해야 흐름을 따라갈 수 있는 느낌이었다.
의도한 바였을까? 라기엔, 목소리를 통해 말하는 사람을 특정할 수도 있을것이고
눈이 멀기전부터 이런 마침표만 있는 대화방식이었다.
작가의 문체의 일부로 이해하는게 맞을 것 같다.
눈이 멀었다가 의미하는 바
차례로 눈이 멀어갈 때, 양심의 부재로 인한 것인줄 알았다.
눈먼자의 차를 훔쳐간 인물이 멀어가는 과정을 통해, 권선징악을 설명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건 나의 선입견이었다.
비슷한 얘기로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이 떠올랐다.
천사가 나타나 당신이 죽을것이라는 고지를 내리면
주위사람들은 "죽을만한 짓을 했구나" 라며 지레짐작하고 마녀사냥을 한다.
하지만 지옥을 본 사람이라면, 고지는 그저 무작위로 벌어지는 어쩔수 없는 현상이었고
이 책에서도 그저 재앙에 가까운, 피할수 없는 현상일 뿐이었다.
눈이 왜 멀게 되었나? 보다는
보이지 않게 된 이후, 사람들의 변화에 집중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보이지 않는 자들의 생활방식
읽다가 감탄했던 부분은, 내가 실제로 눈먼자가 되어 병동에 갇혀있는 생생함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보통 이런 제한적인 환경에서의 생존의 경우, 먹을것에 중점을 두어 서술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생리적인 현상까지 가감없이 보여준다.
눈이 멀어 화장실도 찾지 못하고
복도에서 누군가가 싸놓은 똥을 밟고, 넘어져서 똥을 흘리는데
펑펑 울면서 나는 병신이라고 자책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다행인 것은, 아무도 그 장면을 보지 못했다는 것일까...
남들이 내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점은 다르게도 적용되었다.
아담과 이브가 성악과를 먹었을때, 부끄러움을 느끼고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못 보도록 나뭇잎으로 자신들의 몸을 가렸다는 것이다.
남들이 나를 못 본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게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런 제한된 환경속에
무력을 통한 식량의 독점 및 독재는 클리셰라고 할 정도로 진부한 장면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온다면, 진짜 그럴것 같은.. 인간의 이기심을 잘 나타냈다고 본다.
주인공의 역할
안대를 낀 할아버지가 말했던 표현중에
장님 나라에서는, 애꾸가 왕이라는 말이 있다.
눈이 보일때는 재력, 외모, 힘 등의 다양한 매력이 있었지만
모두가 눈이 안보이는 세상에서는, 눈이 보이는게 가장 큰 경쟁력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눈이 보이는 주인공이 이를 어떻게 활용할까에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기고있었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저 소극적으로 개입하는 관찰자에 가까웠다.
눈먼자들에게 이용당할까봐, 같이 눈이 안보이는 척을 하고
책속에서 그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한, 작가의 시점에 가까웠다.
실제로 눈이 보이지 않는 깡패들의 무력에도 저항하지 않고 순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만 마지막 남은 인류애를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마치 판도라 상자 가장밑에 있던 희망과 같은 존재.
자신의 눈이 닿는 것은 최대한 도우려 하였고,
내가 오늘은 도왔지만 내일은 내가 도움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며
바라지 않는 아가페적인 사랑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소극적이던 주인공이, 깡패 두목을 죽이면서
적극적으로 행동에 옮기던 시점부터, 소설은 다른 국면을 맞았다고 생각한다.
죽어갈날을 기다리며, 어떻게든 식량을 받아 연명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병원을 탈출하여 도심으로 나오는 장면으로
그들만의 방식으로 조직을 구축하며,
상생하고 살아나갈수 있다는 희망적인 생각을 갖게되는 변화지점이었다.
읽고나서
눈의 의미
읽다보면, 양심의 가책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책에 대한 각자에 생각들이 있겠지만,
나는 마음의 눈, 양심, 부끄러움에 관하여 얘기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 이라는 대사가 있다.
나는 이것을 마음의 눈을 닫은 사람들, 양심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들에 대해
눈이 멀어버린 백색 실명을 통해 표현했다고 생각된다.
어쩌면 스스로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본성에 관하여
눈이 멀어버린 상황에서도, 사람들의 행동양식은 제각각이다.
끝까지 인류애를 보여주는 의사 아내,
주어진대로 순응하며 살아가는 첫번째 남자,
자신의 욕구만 해소하려는 차를 훔친 남자,
다른 사람의 것까지 뺐으려는 깡패두목까지 ...
이런 행동들은 백색 실명으로 인한, 갑작스런 행동의 변화라기보다는
눈이 멀기전부터 해오던 행동들, 직업 윤리등과 연관이 있었다.
본성은 변하지 않았고 단지 환경만 바뀌었을 뿐이다.
사실 백색실명은 인물들의 특성을 조금 더 강조해주는 사건일 뿐,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살아온 방식이 아닐까?
이 책에서 처럼, 갑자기 우리의 양심이 가려지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은
행동에 있어 자신만의 정당성만 부여될 뿐, 나라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양심이나 부끄러움은 결국, 남들의 눈치를 보며 생겨나는 감정들이다.
이에 상관하지않고 주도적인 삶을 살아간다면,
어떤 환경에서도 이는 드러날 것이라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