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 전반에 걸친 행복을 찾기위한, 쇼펜하우어의 생각들
읽기전
마흔을 앞둔 자들의 준비사항
책 제목을 처음 보았을때, 마흔이라는 숫자에 먼저 집중이 되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하였고.
아직 마흔을 바라보기엔 이른 나이라고 생각되지만
멀리 바라보아, 미리 알아두는게 나쁘지 않다는 호기심 절반.
불혹이라는 단어가 있듯,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것에 대한 두려움 절반으로 이 책을 고르게 되었다.
읽으면서
'마흔'이 아닌 인생 전반에 걸친 행복론
얼핏 본다면 우리가 마흔에 가져야할 마인드 셋에 대한 내용으로 여겨질 제목이다.
그렇지만 책을 조금만 읽어보면, 마흔과는 크게 연관이 없는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내용들이다.
쇼펜하우어가 유명해진 40대를 이야기 하는것 일수도,
아니면 단순히 흥미를 이끌기 위해
의도적으로 책 제목을 이렇게 지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산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다"
한번쯤 들어봤지만, 누가 했는지는 모르고 있던 쇼펜하우어의 명언이다.
인간의 본성을 삶에 대한 맹목적 의지로 보고,
생존에 필요한 욕구들로 인해 고통이 수반되는
인생은 고통이다라는 전제를 깔고 간다.
이런 전제들을 깨닫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행복해지기 위한
소펜하우어의 행복론에 대한 이야기이다.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
이후에는 쇼펜하우어가 고민한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각 챕터에 연관성이 크게 없고, 독립적인 주제들로 이루어져있다.
내가 마음에 들었던 구문 몇가지만 적어보려 한다.
1) 고통과 권태 사이의 균형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 없어 불행하지만, 부자들은 무료함에 시달린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지나침과 부족함은 같다.
행복은 쾌락의 적극적 추구가 아닌
결핍을 해소하는 소극적 자세에 가깝다.
중용의 자세를 가지고, 적절한 상태에서 감사함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일까?
예전에 취미를 잔뜩 늘렸던 적이 있다.
유퀴즈에서 행복과 관련있는 유일한 변수는 외향성이라는 얘기를 봤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어쩔수 없다는 말이 묘하게 설득되기도 하였다.
실제로 하고싶은 것을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순간에는 즐거웠으나
과도하게 잡아놓은 일정이 버거울 때가 있었다.
이렇게 노잼시기와 넘쳐흐르는 시기를 겪고 나니
지금은 정말 하고싶은 조금의 것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2) 인생의 무게중심을 외부에서 내부로 이동하라
평범한 사람들은 지위나 돈, 사교 등 외부에 의존한다고 한다.
있다가도 없어지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외부에 의해 결정되는 행복은 진정한 행복을 이룰 수 없다고 말한다.
정신적 능력이 탁월한 사람은 다르다.
사물의 본질에 관심을 가지고, 예술/철학/문학 등을 통해 자신만의 견해를 만들어간다.
쇼펜하우어는 행복의 필수 조건으로 교양을 뽑았다.
특히 교향을 쌓기 위한 독서를 강조했다.
요즘 나 책 읽는데...? 라며
사주처럼 모두 내 얘기처럼 들리던 찰나에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사유없는 다독을 경계하라"
이 말인 즉슨, 책을 읽으면서 자신만의 견해가 담기지 않은
그저 책의 흐름, 작가의 생각을 따라가는 상황을 경계하라는 것이었다.
조금 따가웠다.
누군가의 몇 십년간 쌓아온 철학, 특정 주제에 대해 사유한 내용을
한권의 책으로 읽을 수 있어 좋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다녔는데
나의 견해는 책에서 크게 벗어난적이 없었던 것 같다.
작가의 생각을 나의 언어로 바꿔 말한정도였던 것이다.
자기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기 위한 문체인 글쓰기에 대해서도 말하였다.
실제로 독후감을 쓰면서, 한번 더 내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기 위해 다듬어지는 과정이 체감된다.
다만 보여주기 위한 글쓰기가 아닌, 나만을 위한 글쓰기가 되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3) 나만의 거리를 유지하라
"현명한 사람은 적절한 거리에서 불을 쬐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불에 손을 집어넣어 화상을 입거나, 고독이라는 멀리 떨어진곳에서 차갑게 지켜만 본다"
내가 나로써 행복하기 위한, 거리를 인지하고 실천하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 아닌가 싶다.
대부분은 관계의 거리에 대한 내용이겠지만, 취미나 물건 등 특정한 무언가에 종속되고 의존하지 말것에 대한 내용.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나 혼자 스스로도 행복할 수 있어야한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누군가, 무엇인가로 인해 내 삶이 채워지는게 아닌, 이미 충분한 내 삶에 무언가가 더해지는 것.
때로는 사람에게 막연한 기대를 가지지 않고, 고독하게 혼자인 상황을 즐길줄 알아야하며
무엇보다 각자 다른 나만의 거리는 어디인지 파악하려는 자세에 대한 내용 같았다.
읽고나서
그래서 나의 행복이란?
다 읽었으면 그렇구나~ 하면서 넘기기보단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자기의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사유없는 다독일 뿐
소펜하우어가 말하는 행복에 대해 나는 무슨생각을 갖고 있는가?
입버릇처럼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행복의 기준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있었나 싶다.
행복은 상대적이라 생각된다.
누군가는 적은 돈을 가지고도 만족하며 웃음이 끊이지 않지만
누군가는 가지지 못한것을 열망하며 항상 아쉬워한다.
그렇다면 조그마한 것에도 행복하다고 의식적으로 느끼는 삶이 좋은것인가?
웃다보니 웃게되는것 처럼, 행복도 자기 최면처럼 가능한 영역인지. 진짜 행복인지에 대한 의구심은 있다.
그렇다고 편견을 가지고 안해볼 수는 없는 것.
일반적으로 대학에 합격했을 때, 취직했을 때, 큰 돈을 벌었을 때 처럼
누가봐도 행복하다 고개를 끄덕일 상황은, 인생에 많지 않다.
이를 행복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 찰나를 기다리며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까?
몇년 전 유행했던 소확행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너도 나도 유행을 따라 소확행을 찾아가고 공유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행복에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은 많았으나
어떻게 찾아갈지에 대해 방법을 모르는 이들에 대한 이정표가 되어주었기 때문인가...? 싶기도 하였다.
알고리즘을 타고 유튜브에 종종 나오는 서은국 교수의 행복론 강의가 생각난다.
행복의 압정을 뿌려두고, 무의식적으로 지나가다 밟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알람 한번만에 깨서 아침을 맞이하면 행복해'
'한번도 안깨고 잠을 푹 잔다면 나는 행복해'
등의 행복의 기준을 여러개 뿌려두고, 생활속에서 문득 느끼라는 내용이었다.
행복의 기회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다만 그것을 잡는것은 개인에 따라 천차 만별이지 않을까
누가봐도 행복할만한 사건을 통해 수동적으로 행복을 느끼기 보다는
행복에 대해 자각하려 애쓰는 사람이 더 많은 행복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커다란 행복이어도 오래 가지 않는다.
대학교 입학 뒤에는 학점에 대한 스트레스가, 취업 이후에는 성과와 적성에 대한 고민등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행복은 절대적인 양이 아닌, 빈도로부터 오는 자각과 인식의 느낌이 아닐까
정답이 없는 내용이다 보니 확신이 없고 의문문으로 문장이 마무리된다.
결과보다는 과정에서, 크기보다는 빈도속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해봐야겠다.





























